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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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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2019.10.29] [취재후] “우리의 삶이 처음부터 범죄피해자의 삶은 아니었으니까요”
  • 등록일  :  2019.10.30 조회수  :  1,384 첨부파일  : 
  • [취재후] “우리의 삶이 처음부터 범죄피해자의 삶은 아니었으니까요”
    "(범인을) 잡아서 피해자한테 얼마 보상은 해주나요? 우리 촌에 살지만 그 전에 그거 치료하느라고 혼났어요. 아주."



    위 말씀이 계속 기억에 남았습니다. KBS는 지난 14일과 15일, '명일동 주부 살인사건'과 '미아동 살인미수 사건'의 피의자가 확인돼 15년 만에 재판에 넘겨졌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당시 취재진은 15년 전,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이른바 '묻지마 칼부림'을 당했던 피해 여성의 가족을 수소문했습니다. 피해자 가족은 "범인이 잡혔다는 사실을 몰랐다"면서도, "수술비와 치료비를 모두 가족이 부담했는데 보상은 받을 수 있는 거냐"고 되물었습니다. '무고한 범죄 피해자인 것도 모자라서,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억울함이 얼마나 컸을까', '15년이나 흐르긴 했지만 방법은 없는 걸까' 그렇게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처음 연락했습니다.



    범죄피해자구조제도는 '사건 발생 10년'으로 지원 기한을 정해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죄피해자지원센터로부터 '피해자지원 심의위를 통해 지원이 가능한지를 살펴볼 수는 있다'는 조언을 얻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사례도 있었다는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그렇게 저희는 김 모 씨를 만났습니다.



    ■ "'갈팡질팡'하던 시간,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로 붙잡았습니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내담자들범죄피해자지원센터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내담자들



    [연관기사] “범죄 피해자들, 피해자인 제가 돕습니다” KBS 1TV ‘뉴스9’ (2019.10.27.)



    김 씨는 2004년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사고사인 줄 알았던 남편이, 누군가에 의해 사망한 것이라는 사실을 10년 만에야 알았습니다. 김 씨는 무엇보다, 범인이 남편의 지인이었다는 사실에 배신감이 컸다고 말했습니다.



    겨우 추스른 마음은 10년 만에 다시 격동했습니다. '갈팡질팡하던 시간'을 붙잡아준 건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김 씨는 "당시에는 심리적인 혼란이 매우 컸다"면서, "(내가) 위로받으려고 왔지, 저들을 위로해줘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의 상담을 맡았던 상담가는 김 씨를 조금 다르게 기억했습니다. "한 차례도 상담 시간에 빠지지 않았던 성실한 내담자"였다면서,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 분이라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 김 씨는 센터에서 다른 피해자를 돕는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대신 재판에 들어가 내용을 요약해주는 역할을 3년째 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 씨는 가정폭력, 성폭력 사건 재판을 많이 맡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 다수가 다문화 가정에 속해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한국어 교원자격증을 땄고, 현재는 다문화가정센터에서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을 세상 밖으로 꺼내준 상담가를 보면서 상담원 자격증을 취득했고, 사회복지학 석사를 따냈습니다. 현재는 박사 과정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 '센터당 예산 평균 2억 원'.."권리 고지 의무도 4년밖에 안 돼"

     



    범죄피해자 지원은 헌법 정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1987년 개정헌법은 피해자의 의견 진술권(제27조 제5항)과 범죄피해자구조청구권(제30조)을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열악했습니다. 2010년까지만 해도 국선변호인 선임 등 범죄자를 위해 쓰이는 돈은 연간 2천억 원이 넘는데, 정작 범죄피해자를 위해서는 연간 40억도 안되는 예산이 쓰였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2010년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이 제정됐고 벌금 집행액과 기부금 등으로 보호기금을 법적으로 마련하게 됐습니다. 이 예산을 법무부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 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부처에서 운용하는 겁니다.



    법무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는 매년 150억여 원의 예산을 씁니다. 그런데 전국에 59곳의 센터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 센터당 연간 평균 예산은 2억여 원에 불과합니다. '범죄피해자 권리 고지 의무화'도 불과 4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수사기관에서 범죄피해자 권리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를 의무로 알린 지 4년밖에 안 된 겁니다. 많은 범죄피해자가 권리 행사 방법도 모른 채 넘어갔을 수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 "우리의 삶이 원래부터 피해자의 삶은 아니었잖아요"




    범죄 피해 지원은 왜 필요할까요? 김 씨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범죄 피해자 가족이면서 지원을 받았고, 다른 피해자들을 돕고 있으면서, 앞으로의 계획도 세웠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피해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왜 세상 속으로 나와야 하는지' 되물었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상처받은 많은 피해자가 그렇게 반문할 것 같았습니다. 김 씨는 "우리의 삶이 원래부터 피해자의 삶은 아니었지 않으냐"고 말했습니다. "어느 순간에 갑자기 피해자가 된 것이니, 그렇다면 피해자의 굴레를 벗어날 권리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다른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김 씨는 강한 의지를 담아 말합니다. 하지만 무겁게 깔린 그 목소리에서, 가늠하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도 묻어났습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김 씨의 이야기는,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상처를 주기보단 위로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자는 명제를 던집니다. 또, 언론이 기사에서 다루는 '사망'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새삼 느끼게 합니다. 기자들로 하여금 언제나 이면에 '피해자가 있다'는 생각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